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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 송이 해바라기  
Still Life: Vase with Twelve Sunflowers

1889,1, 캔버스에 유채, 92  x 72.5
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 아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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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는 빈센트의 상징이었다. 1888년 8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더욱 단순한 기법으로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다고 썻다. 오랜 동안 빈센트가 남긴 열 점의 <해바라기>에서 단순미를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1987년 그 중 한 점이 4천만 달러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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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 송이 해바라기
Still Life: Vase with Twelve Sunflowers

1888, 8 캔버스에 유채 91 x 72
Munich, Bayerische Staatsgemaldesammlungen, Neue Pinakothek


고흐가 그린 모든 작품은 그의 자화상이 된다.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또 파리에서 아를르로 조금이라도 더 태양에 접근하려고 따라갔다.
그의 이러한 태양에 향하는 집념은 어쩌면 해바라기를 꼭 닮아 있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를르 지방에서도 여러 점의 해바라기를 그린 작품을 남기고 있고, 그 결과 해바라기는 곧 고흐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렸지만 결국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고흐는 해바라기 연작을 통해, 태양의 강렬한 빛을 좇는다.
따라서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강렬한 노란색은 고흐에게 생명의 색으로 해석되어지는 것이다.

해바라기의 형상이나 색채, 그리고 해를 향하는 성질은 고흐의 내면적 원형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해바라기는 고흐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게 되어 버린 것이다.
 미묘한 톤의 파랑색을 배경으로, 강렬한 변화의 노랑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바로 고흐 자신이 그의 동생에게 설명했듯,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풍부한 변화상을 나타내는 태양에의, 또 생명에의 찬가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그 자신의 강렬한 생명력을 그는 해바라기를 통하여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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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이야기 - 열 네 송이 해바라기  

열 네 송이 해바라기  
Still Life: Vase with Fourteen Sunflowers

1888, 8, 캔버스에 유채 93 x 73
런던, 국립미술관



가장 중요한 해바라기 그림은 런던 국립 미술관에 있는 <해바라기>인데, 빈센트는 거기서 가는 선들과 매끈한 붓질을 번갈아 사용했고, 꽃잎과 줄기는 윤곽선을 약하게 하면서 꽃의 노란색 중심부는 이차색으로 구성하는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고 있다.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는 "너도 알겠지만, 쟈넹에겐  작약 그림이 있고, 코스트에게 접시꽃 그림이 있다면, 나에겐 해바라기가 있다." 라고 쓰고 있다. 그는 이 눈부신 정물화를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에 대칭하는 그림이라고 생각했고, '온전한 노란색, 오랜지색, 그리고 고통으로 남프랑스를 그렸던 몽티셀리와 프로방스 지방에 대한 찬양의 표현이라고 했다.

-카롤린 마티유, 창해ABC,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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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낙타를타고
고흐이야기 - 해바라기

Still Life: Vase with Fourteen Sunflowers

Oil on canvas
100.5 x 76.5
Arles:1, 1889
도쿄, 현대 아트 Seiji 도쿄 야스다 기념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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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이야기 -  여성들이 세탁하는 아를의 랑그루아 다리

여성들이 세탁하는
아를의 랑그루아 다리
Langlois Bridhe at Arles
with Women Washing, The

1888, 3 캔버스에 유채
54.0 x 65.0 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빈센트가 아를에서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그의 집념을 불러일으킨 모티브 중의 하나가 이 도개교이다. 아를에서 부크에 이르는 운하에 놓여 있는 이 다리는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다리에 대한 향수를 그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것이다. 네덜란드에 비하면 밝은 광선에 맑고 푸른 하늘과 물에 둘러싸인 굵고 가는 선의 결구(結構)로 이루어진 단순한 모양의 다리의 조형은 그의 표현 의도에 알맞게 들어맞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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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이야기 - Milliet의 초상 , Zouaves의 소위

Milliet의 초상 , Zouaves의 소위
캔버스에 유채
60.0 x 49.0
Arles :늦은 9월 , 1888
Otterlo ,Kr ler-M ler 박물관

"고흐는 색깔이 뭔지 개뿔도 모르는 화가요.
소묘라도 하는 것처럼 눈어림으로 마구 물감을 휘두르기 일쑤지요.

원래 밑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물감을 가지고 덧칠을 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까?
완전히 거꾸로 되었지요.
그러니 밑그림과 색채가 완전히 전혀 따로 놀아요.

색을 써도 묘하게 쓰는 겁니다.
종잡을 수 없는 산만한 색, 요상한 색, 쓰지 말아야 할 색, 주체할 수 없이 뜨거운 색, 힘이 마구 뻣치는 색들을 거침없이 씁니다. ...화가라면 마땅히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그려야지, 그림에다 자신의 열정을 무작정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감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 제대로 된 그림이지요.
그런데 고흐는 붓으로 마구 폭력을 부리는 것 같아요.....고흐가 그린 그림을 보면 가만히 있어도 괜히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올라오는 기분입니다.....사람들이 고흐를 미치광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거 같아요.

(알제리에서 근무하는하는 프랑스 군이 밀레는 처음 빈센트와 사이가 좋았다. 소묘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했는데, 정작 자신의 초상화가 완성되자 엉터리라면서 싸우게 되었다..)

맞는 말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빈센트를 좋아하는 거고, 위와 같은 말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창조적인 색상과 열정을 가진 화가의 작품에 관객은  그의 그림에서 눈을 떼어낼 수 없다.그는 우리를  더 높은 감상의 세계로 이끈다. 감동적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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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이야기 - 자장가


자장가

1888,12 캔버스에 유채
92 x 73
네덜란드, 오테를로, 크뢰러 뮐러 미술관


우편 배달부 룰랭의 부인을 그린 작품이다.
빨강, 노 랑, 초록 고흐의 기본적인 색채 관계를 나타내는 보다 전형적인 작품이다. 그는 음악이 외로운 영혼을 달래 주듯 그림이 또한 그러기를 바랬다.  부인이 손에 쥔 것은 요람의 손잡이이고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요람에는 아기가 누워 있고, 어머니가 요람을 흔들며 자장가를 불러 준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

"작년에 어디에선가 글 쓰는 일과 그림 그리는 일은 아이를 낳은 일과 같다는 글을 읽었습니다.저는 그 글을 읽고 과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물론 아이를 낳는 일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더 자연스럽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저는 다른 무엇보다 제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비록 그림그리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받지 못하는 일 중 하나이지만,저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유일한 고리거든요.... "     1890년 6월 12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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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이야기 -  로노강의 별이 빛나는 밤


로노강의 별이 빛나는 밤
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 9 캔버스에 유체  
72.5 X 92
개인소장





 "도시와 마을을 나타내는 지도의 검은 점들이 나를 꿈꾸게 하듯,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늘나를 꿈꾸게 한다...타라스콩이나 주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듯 별에 가려면 우리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1886년 6월

하늘은 청록색이고, 물은 감청색, 대지는 얇은 보라색이다. 도시는 파란색과 보라색을 띄며노란색 가스등은 수면위로 비치면서 붉은 황금색으로 초록빛을 띈 청록색으로까지 변한다.

그 중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별은 가스등의 노골적인 황금색과 대조를 이룬다. 전경에는 두 연인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별이 그의 가슴으로 후드득 떨어져 내리는 듯 하다. 한결 서늘해진 강바람과 가슴을 파고드는 외로움이 그의 그림속 어두운 밤 하늘에서 언뜻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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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이야기 -

파이프를 문 귀를 자른 자화상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Arles 1889, 1
Oil on canvas 51 X 45
개인소장



자신의 귀를 자른지 불과 한달 후, 1889년 1월에 그린 자화상으로 빈센트는 그의 광기를 다스리기 위해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왜 빈센트는 하필이면 귀를 잘랐을까? 이것에 대한 의문이 사실 이 홈페이지를 생각하게된 이유중 하나인데 이것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아래는 '태양을 훔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염명순, 아이세움'에서 발취(拔取)한 글이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단지 추측일 따름인데 빈센트는 아를르의 투우장에서 투우 경기를 여러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투우에서 황소를 쓰러뜨린 투우사는 황소의  귀를 잘라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추측을 해보면 빈센트는 승리한 투우사의 처지였을까? 아니면 패배한 소의 처지였을까?"

 상상은 자유다...마음껏 생각하자...누가 뭐라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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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이야기 - 우편 배달부 조셉 룰랭의 초상

우편 배달부 조셉 룰랭의 초상
Portrait of the Postman Joseph Roulin

1889, 4 캔버스에 유채 65 x 54
네덜란드, 오테를로, 크뢰러 뮐러 미술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색채를 사용하여 내 자신이 개성을 보다 강하게 표현하고 싶다."

빈센트가 아를에 머물던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우편배달부 조셉 롤랭의 초상화를 여섯 차례나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그리에 물두하면서 자신이 그리고 있는 초상화의 색채가 누에넨에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렸을 때보다 밝다는 사실을 테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델마다 여러 장의 초상화를 그렸다.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 "인물화, 인물화 그리고 또 더 인물화를 그리고 싶다."라고 썼다.